달러가 전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으면서 그 힘이 매우 강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훌쩍 넘기기도 했듯이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달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금과 은이 화폐로 유통되던 시대
고대부터 금은 균일한 품질로 세분이 가능하다는 점과,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하다는 점, 외관상의 아름답다는 이유 등으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귀한 광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금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많이 생산되는 자원이었고, 과거 북아프리카를 영토로 삼은 로마 제국의 왕인 콘스탄틴이 솔리더스라 불리는 금으로 만든 화폐, 금화를 발행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쇠퇴함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금의 유입이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금에 다른 물질을 섞여 파는 등, 금의 품질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짜 금에 속아 거래한 사람들이 늘어나지 시작했고, 화폐의 품질 문제와 함께 가치가 하락면서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 로마 제국은 붕괴되었습니다.
반면에 중동은 금을 많이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은을 돈으로 사용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이슬람 제국이 중동에서 아프리카 북부 해안까지의 지역을 통일했을 때, 로마의 금화와 함께 디르함이라는 은으로 만든 동전이 화폐로 사용되었습니다.
■ 지폐의 탄생
하지만 아무리 은이 화폐이더라도 운반하는 것은 무겁고 불편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에는 은을 보관하고 예금 증명서를 발급하는 환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환전소는 이탈리아어로 "banko"라고 불리며 여기에서 "은행"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한자 "은행"은 "은을 거래하는 상인 협회"를 의미합니다.
환전상(은행)이 발행한 은 바우처는 결국 돈으로써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은 멕시코와 남미에서 은광을 차례로 발견하고 대량의 은화를 발행하여 유럽으로 가져왔습니다. 이 은화는 "해가 지지 않는 땅"이라고 불리는 스페인의 영광을 가져왔지만 은광이 고갈되기 시작하였고, 영광의 기간은 약 1세기 밖에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붕괴되기 시작한 스페인 함대를 신흥 국가인 영국이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은광을 직접 운영할 필요가 없이 무역을 통해 은만 받으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번성하였던 모직 산업과 면화 산업을 바탕으로 제품은 전 세계에 수출하였습니다. 이렇게 세계의 은이 런던으로 모이기 시작하였고, 이는 기반으로 영국은 산업 혁명을 일으켜 전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기축통화국의 변화
유럽에서 지폐가 발행되기 시작한 시점은 17세기입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 은행을 "정부 은행"으로 승인하고 파운드를 발행할 독점권을 부여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전쟁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면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저금리로 자금을 제공하도록 강제하면서 세금 인상에 대한 고민을 지운 것입니다.
대항해시대부터 계속되고 있는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제도를 은본위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은광의 과도한 채굴로 가치가 하락하면서, 영국은 앞장서서 무역에 대한 화폐로 금 지불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산업혁명을 일으킨 기반을 은으로 쌓은 것처럼, 전 세계에서 유입되는 금을 기반으로 대영 제국의 번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19세기에 가치가 높은 금을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제로 전환되었습니다. 하지만 면직물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영국 또한 19 세기 말, 화학 산업을 발전시킨 미국과 독일에 경제 패권을 내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금은 외국인 투자의 반환과 함께 계속 유입되었고 파운드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정적인 것은 1차 세계 대전이었습니다.
전쟁터가 되지 않은 미국은 군수품을 대량 생산하여 유럽의 교전국에 수출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영국 정부가 발행한 전쟁 채권을 인수하여 채권국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을 포함한 다른 유럽 국가들은 전쟁 채권을 금으로 상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런던에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던 금은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월스트리트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 미국의 금융 위기와 2차 세계 대전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 엄청난 자금은 국내 자본 및 외국인 투자에 사용되면서 세계 1위의 국력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패전국인 독일의 경제 회복을 위한 자금 투자와, 이후 차츰 회복된 유럽의 경제로 인해 수출이 감소하고 재고가 쌓여가면서 기업 이익이 악화되었습니다. 추가로 잉여 자금은 주식과 채권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실물 경제와는 거리가 먼 주가의 상승이 발생한, 거품 경제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거품 경제는 1929년 10월 주가가 폭락하면서 터졌고, 세계 경제의 원동력이었던 미국의 금융 위기는 대공황을 촉발했습니다. 금본위제에서 무역 대금은 금으로 지불되므로 무역 적자는 곧 금의 유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보유한 금의 양과 동일한 지폐를 발행하기 때문에 금이 유출되면 통화를 발행할 수 없고, 이러한 이유로 다른 방법의 경제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미국은 최후의 수단으로 금본위제를 막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바우처로 달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금본위제의 폐쇄에 따라 세계 무역은 기축 통화 없는 상태에서 위축되었지만 영국은 식민지 내에서 무역을 유지하고, 외국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산업을 보호했습니다. 반면 독일, 일본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의 경우 산업을 보호할 식민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식민지화를 통해 시장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입니다.
■ 기축통화 달러의 탄생
1차 세계 대전과 마찬가지로 전장은 유럽, 동아시아 및 태평양 해역에 있었고 미국은 군수품부터 석유까지 최대 용량으로 생산하여 교전국에 판매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미국이 직접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이탈리아 왕국의 조기 항복, 나치 독일의 베를린 전투 이후 히틀러의 자살, 일본의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등으로 연합국 진영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은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의 전후 재건에 투자되었으며 전쟁 고아의 굶주림을 충족시키기 위해 긴급 구호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막대한 군사 지출을 지원했으며 미군이 "세계의 경찰"로 계속 배치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미국의 달러가 더욱이 기축통화로써의 입지를 견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 마무리
이렇듯 미국은 달러의 지배력을 점점 더 키워나갔고, 금과 더불어 안전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생긴 모든 경제적 위기 때마다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축통화로써의 달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 만큼 앞으로 경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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